5/29/2007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가능하면 정말 마음에 드는 소수의 것들만을 오랜 기간 소유하고자 노력한다. 헤이리 북하우스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주말 이틀 사이에 완독. 글쓴이의 배경이 독특하여 전적으로 공감하기 어렵고 그닥 와닿지 않는 부분도 많으므로 다 읽기를 추천할 만한 책은 아니다. 그나마 책 제목이 가장 인상적이랄까? 다큐멘터리 사랑 시리즈 중 '벌랏마을 선우네'를 보며 가난하되, 우아한 집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에 들었던 두 단락.

(p.105)...자동차를 단순히 이동수단이 아니라 특별한 향락 수단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페트루스나 슈발블랑 포도주를 날마다 마시지 않듯이, 자동차도 가끔 그리고 의식적으로 타야 하네. 그것도 인적 없는 해변 도로나 산악 도로에서 말일세」...(미술평론가이자 자동차 철학자 니클라스 마크)

← 이것이 바로 주말이면 중미산으로 가는 이유.

(p.118)...관광객으로서 허겁지겁 세상을 헤매는 대신 두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음미하는 것이야말로 장소 이동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휴가를 떠나는 것'보다는 집에 머무르는 것이 백 번 천 번 더 낫다...

← '내가 싱글이라면 틈 날 때마다 어디든 여행을 다닐텐데, 넌 왜 그러니?'라고 묻는 이들에게 이렇게 답하고 싶다. 여행 가기 전 여행지에 대한 사진과 상세 정보를 잔뜩 수집하고 그 여행지에 가서는 미리 수집한 정보와 맞는지 확인하고 정해진 가이드에 따라 '체험'하는 식의 여행, 정말 싫다. 열심히 사진 찍어와 봤자, 인터넷이나 책자에서 나오는 사진보다 더 좋은 사진 뽑기는 어렵다. 차라리 늘 다니는 길이라도 제대로 탐험하기... 이런 식이 내겐 오히려 더 즐거운 경험이다. 게다가 여름이와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된다.

프로방스, 파주

자유로에서 헤이리로 들어가기 직전에 좌회전을 해서 좁은 길을 조금 따라가다 보면 알록달록한 색상의 상가 건물들의 무리지어 있는 장소가 나오는데, 그 곳이 바로 '프로방스 마을'이란다. 그 곳 사진들이 워낙 화려하길래 꽤 기대를 가지고 찾아갔는데, 원래가 사진빨 잘 받도록 일부러 조성한 곳이랄까. 실제로 가 보면 국적없는 조잡한 장식에, 어찌 보면 유치한 색상 조합, 그닥 특별할 것이 없는 제품들에 실망한다. 그래도 유치하나마 그런 동네를 쉽게 볼 순 없기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는 사람과는 가끔 같이 구경가는 장소이다.


↑ 장난감스러운 미니에 잘 어울리는 장난감스러운 동네.

프로방스에서 건질 만한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진빨 잘 받는 컬러풀한 건물 벽면, 그 다음은 프로방스 베이커리에서 판매하는 '녹차 고구마 찰식빵', 마지막은 허브샵에서 판매하는 '천연 허브 비누'. 그 동네 공방에서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것들이라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데, 무게 기준으로 가격이 매겨져 있고 칼로 잘라서 쓰면 된다. 집에 여분의 비누가 많아 아직 사 보진 못했지만 조만간 꼭 하나 사 봐야지.

카메라타, 헤이리

파주 헤이리에 가면 한길사의 북하우스와 그 길 윗쪽에 위치한 황인용의 황인용의 뮤직 스페이스, 카메라타(Camerata) 두 곳은 꼭 들른다. 북하우스 내부의 길을 따라 길게 진열된 서가를 걷다 보면 예상치 않게 눈에 띄는 책들을 꼭 한 두 권은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시원한 바람 부는 초여름, 북하우스 옥상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책장 넘기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북하우스의 출입문은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유리 문에 늘 활짝 열려 있는 데 반해, 카메라타의 육중한 철문은 늘 닫혀 있고 드나드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처음으로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데엔 시간이 꽤 걸렸다. 앞쪽 벽면엔 이렇게 분필로 공연 프로그램 일정과 공지사항을 적고 지우고 할 수 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 7시엔 공연이 있다. 공연 있는 시간대엔 1인당 입장료 2만원, 공연이 없을 땐 1만원을 입구에서 선불로 낸다. 음료 리스트가 인쇄된 작은 종이를 주는데, 거기에 체크를 해서 주면 음료가 준비되었을 때 가지고 가라고 부른다. 모든 음료는 커피로 무제한 리필 가능이다. 머핀류도 본인이 먹고 싶은 만큼 가지고 와서 먹을 수 있는데, 그렇게 가져 온 빵을 남기면 벌금 1천원을 내야 한다는 경고문이 있다. 나무 테이블 위엔 돌멩이에 묶여진 연필과 연필깍기가 놓여있고, 메모지에 듣고 싶은 곡을 써 내면 들려주기도 한다.



분위기 좋고, 음악 좋고, 자리 편하고, 가끔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미중년(!) 황인용 아저씨도 볼 수 있음도 좋은데, 역시 카메라타도 완벽할 순 없으니. 제공되는 음료와 커피는 정말 맛이 없고, 머핀류는 코스트코에서 사 오는 것으로 추정된다. 무제한 리필 안 해도 좋으니 정말 맛있는 커피 한 잔, 주스 한 잔, 티 한 잔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출입문 앞쪽으론 주차장이 있는데, 주차장 옆 벽면은 흑칠판이다. 조만간 음악 공간 외 미술작품 전시공간도 마련되나 보다. 비 오는 날, 재미있는 책 한 권 가지고 가서 음악 들으며 쉴 수 있는 곳으로 강추.
***
고양이의 일생을 정말로 실감나게 그린 '묘한 고양이 쿠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있는 9권(완결판).

놀라운 신축성, 그리고 갸우뚱

어느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의 말에 따르면, 고양이들은 대부분 스스로 자기 몸의 크기를 실제보다 좀 작은 것으로 인식한단다. 그래서 사람이 보기엔 꽉 끼는 상자, 비좁은 장소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을 즐기고 그 속에서 아늑함, 편안함을 느낀다나. 그 말이 진실이라면, 여름이도 예외가 아니다. 원래 이렇게 긴 녀석이 맘에 드는 작은 박스나 가방이 있으면 그 크기에 맞게 완벽한 조절이 가능하다는 사실.



5kg 내외의 작은 고양이의 뼈와 관절개수가 사람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그렇게 유연할 수 있다고도 한다. 이 종이백은 한 달 전 여름이 생일 선물로 받았던 케익상자를 담았던 것이다. 크기가 너무 작아 여름이 장난감으로도 사용할 수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어느 샌가 여름이가 편히 자릴 잡고 앉아 있어서 오랫동안 버리질 못했다. 편하게 앉아있을 때 손잡이를 잡고 들어 올려 자리를 이동시켜도 그 속에 가만히 앉아 있는 느긋함.



↓ "내가 뭐?"


갑자기 보일러실 문을 열어보라고 조르는 중이다. 고양이들은 왜 뭔가를 조르거나 항의할 때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는 것일까? 보노보노의 포로리도 '나 때릴꺼야?' 하고 물을 땐 꼭 고개를 갸우뚱 했었다. 사람도 필요에 의해 괜히 '귀여운 척' 할 때엔 고개를 약간 기울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렇게 하는 데엔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일까? 알고 그러든, 모르고 그러든, 여하튼 무진장 귀여운 포즈임엔 틀림없다.

5/28/2007

아카시아 #21

주말 극장가는 온통 '캐러비안의 해적 3편'으로 뒤덮인 것 같다. '밀양'을 볼까 잠깐 망설이다 내일 비 소식을 보고 햇살 가득한 도로를 달리기로 했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집을 나서 길이 막힐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잘 빠진다. 팔당대교 조금 못 미쳐서 마라톤 대회를 위한 교통통제가 있었지만 그래도 심한 정체는 없었다. 양 무릎에 보호대까지 하고 달리는 사람들, 그들은 발로 달리고 나는 차로 달린다. 그 옛날 한 병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42.195Km가 이젠 일반인도 즐기는 스포츠로 인기라니.



옥천면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삼거리 한 가운데에서 4중 추돌 사고가 일어났다. 돌아오는 길에도 비슷한 3중 추돌 사고를 목격했다. 날씨가 더워져서 졸음운전했나? 경험상, 한 잔의 음주운전보다 졸음운전이 훨씬 위험하다. 하지만 졸음운전 단속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겠나. 대신 차 내부에 운전자의 눈동자와 반응민감도를 측정하여 졸음이 감지되면 경고음이나 경고등이 켜지는 장치는 갖출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서울을 벗어난 이후, 5월의 아카시아 향이 짙게 느껴졌다. 마치 아카시아향 껌을 차 내부에 열 개는 까 놓은 것 만큼이나 달콤하고 향긋한 꽃내음이 가득했다. 천문대 앞마당에서 오래간만에 사진이나 한 장 찍을까 했는데, 아이들을 가득 채운 관광버스 두 대가 이미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포기했다. 평소보다 늦은 시각이라 그런지, 숲길을 내려오는 도중 앞 뒤 동행 차들도 있었다. 중간에서 만난 이 코란도... 규정속도 30km인 숲길이 끝난 지점 이후의 편도에서도 계속 같은 속도를 유지했다. 일반 도로 같았으면 추월했겠지만 워낙 굴곡 많은 길이라 그럴 수도 없고, 내 뒤로도 네 대의 차가 더 따랐지만 다들 포기한 듯 천천히 경치를 즐기며 달렸다. 그 차와 헤어진 뒤, 다시 팔당대교로 가는 길은 시원하게 뚫려있었다.



팔당댐 근처 작은 다리를 건너기 직전, 골프동호회 차를 만났다. 본넷만 까맣게 도색된 빨간색 5세대 GTI. 정모에서 두어 번 본 적이 있는데 차와 사람이 매치가 안 되어 누구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그 길에서 동호회 스티커 붙은 차를 만나긴 처음이라 혼자 반가왔다. 미사로에서 만난 오렌지색 뉴비틀 컨버터블. 계속 차선을 오락가락하더니 결국은 한참 뒤에 따라온다. 무조건 빈 틈이 있는 차선을 찾아 들어간다고 해서 더 빨리 가는 것은 아닌데, 위험할 정도로 이리 저리 칼질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끼어들기에서 쾌감을 느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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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커피집 커피스트엔 지금까지 몇 번 갔을까. 2005년 10월부터 지금까지 200번은 확실히 넘고, 아마도 250번은 되려나? 어떤 주엔 일주일에 다섯 번도 갔었지만, 바쁠 땐 이주일도 못 간 적이 있으니. 처음엔 누구와 같이 갔는지, 영수증에 이름도 적어 보관했었는데 이젠 밥 먹는 것 만큼이나, 매주 마트 가는 것 만큼이나 일상화되어 버려서 더 이상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나 늘 비슷해 보이는 그 곳도 갈 때마다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기록하지 않으면 금방 잊혀져 버린다. 사랑은 가도 추억은 남는다는데, 추억을 위한 보조기억장치가 기록이지 않겠나.

중미산 천문대에 지금까지 몇 번 갔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오늘을 스물 한 번째라고 임의로 설정했다. 지난 주에 비해 얼마나 더 나무가 자랐고, 짙은 초록이 더해졌는지, 하늘과 강물은 어땠는지, 길에서 또 어떤 차들을 만났는지, 서른번째까지 기록해 볼 작정이다.

5/26/2007

중미산 숲길

미니에 첫 시동을 건 것이 작년 9월 28일. 예전 골프는 1996년생 90마력, 미니는 2006년생 170마력. 골프에 비해 2배에 가까운 마력에, 10년간 진화했을 기술력과 장비로 무장된 한 미니는 조금만 엑셀을 밟아도 울컥 튀어나가려는 야생마 같은 녀석이었다. 하필이면 추적추적 비 내리는 목요일 저녁, 퇴근시간 정체 속에 발가락 끝 힘 조절하느라 땀 삐질 삐질 흘리며 겨우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바빠서 추석 연휴가 시작될 때까지 계속 주차장에 세워두기만 했다. 드디어 10월 3일 개천절 화창한 날. 추석을 낀 장기간의 연휴를 맞이하여 미니와 본격적으로 친해보고자 선택한 드라이브 목적지가 바로 '중미산 천문대'.



사실, 중미산의 와인딩 코스보다는 중미산 천문대에서 운영하는 야간 행사 '당일 별자리 여행' 참석을 위해 사전답사 차 가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가 보니, 천문대는 생각보다 볼 품이 없었고 천문대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 - 중미산 휴양림을 거쳐 서종으로, 그리고 북한강변의 352번 국도로 이어지는 숲길에 반해 버렸다.

가을이라기 보다는 늦여름, 생기가 느껴지는 건장한 나무들,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 10킬로가 넘게 이어지는 꼬불꼬불 숲길 안에 분위기 깨는 영업집 간판도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중간 중간 있는 마을은 그저 조용하고 소박한 마을이 있다. 그 후로 한 달에 서너 번씩, 중미산 숲길의 가을-겨울-봄을 마음에 담았고, 이제 여름을 맞이하는 시점에 있다. 지금까지 그 길을 몇 번이나 달렸을까.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스무 번을 넘어 서른 번에 가까와지는 것 같다. 갈 때 마다 다른 느낌의 길. 그래서 이젠 내게 아주 각별한 길이 되었다. (원래 목표였던 천문대는 문턱도 못 넘어봤다.)

평생 '운전은 초보'라고 생각하며 살기로 다짐했기 때문에, 고속 와인딩은 꿈도 꾸지 않는다. 사람도 없고, 재촉하는 앞 뒤 차도 없는 도로를 마음 내키는 대로 때론 천천히, 때론 조금 속도를 내어 보기도 하면서 달리는 재미를 위해서이다. 날씨가 흐리면 흐린 대로, 날씨가 맑으면 맑은 대로, 선루프와 양 옆 창을 모두 활짝 열고 바람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음악 없이 나무와 바람 소리만 들어도 좋고, 가끔은 아주 느린 음악-레퀴엠 같은-을 들어도 좋다.

토요일 오전 그 곳까지 다녀오는 데 거의 세 시간 정도. 12시 이전에 서울로 돌아올 수 있기만 하면, 그런대로 교통 체증은 피할 수 있다. 휴일 이른 시간이라 주로 혼자 가기 때문에 중간에 쉬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 곳 사진도 처음 간 날에 찍은 사진 뿐이다. 한화콘도→천문대→서종으로 가는 길엔 차가 거의 없는데, 그 역방향으로 달리는 차들은 꽤 많이 만난다. 다만, 한화콘도에서 천문대까지 가는 길은 양보차선을 포함한 2차선과 1차선이 번갈아 나오고 도로폭도 조금 넓은 편인데 특히 코너 부분의 충돌사고를 조심해야 한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오토바이나 자전거로 그 길을 오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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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블로그에선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썼을 때 링크에 링크를 타고 이어지는 사람들을 통해 많이 알려졌겠지만, 한국어로 된 블로거에선 그럴 염려가 없어 좋다. 소수의 운 좋은(?) 사람들과 조용히 공유할 수 있는 숨어 있기 좋은 장소.

5/22/2007

제4의 눈

제1의 눈, 나안 (나의 눈, 맨눈)
제2의 눈, 아큐브원데이 (하루 끼고 바로 버리는 컨택트렌즈, 하루 2개 대략 2천5백원 정도)
제3의 눈, 가정용 안경 (뱅글뱅글, 좀 두껍지만 튼튼한 재질의 렌즈)
제4의 눈, 외출용 안경 (약간 완화된 뱅글뱅글, 그러나 너무 작은 렌즈)

회사 동료들은 나의 시력이 엄청 좋은 줄 안다. 식염수 한 번 가지고 다닌 적 없고, 밤을 새도 웬만해서는 눈동자가 충혈되는 일도 없으며, 선글라스 외의 시력교정용 안경을 쓴 적도 없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나의 시력은 과거에 힘들이지 않고 군 면제가 될 수 있는 수준. 의사에게 물어보니 대략 0.01 정도, 그리고 렌즈 도수로는 마이너스 10디옵터 정도 된다. 좋은 수술법도 많다지만 아직은 용기가 나지 않고, 또 수술로 확실한 교정효과를 볼 수 있는 시력도 아니라서 아직은 계획 없다. 대신 낮에 바깥 활동할 땐 원데이아큐브로, 밤에 집에선 안경으로 버티는 중이다. 시력은 나쁘지만 교정도 잘 되고, 특별한 부작용이나 질환이 없으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오후만 되면 눈이 침침해 지는 증상이 나타났고, 날이 갈 수록 심해졌다. 얼마 전 친구가 안경을 맞추러 갔다가 이제 슬슬 노안에 대비해야 할 나이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했는데, 벌써 나에게도 그런 시기가 찾아온 것일까 내심 착찹했다. 한편으론, 하루 12시간 이상 모니터를 들여다 보는 생활이니 눈에 얼마나 무리가 됐을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하튼 눈 침침 증상을 조금이나마 완화해 보려고 낮 시간에도 쓸 수 있는 안경을 하나 맞췄다.


↑ 더 멋진 안경테도 많았지만 내 도수에선 선택의 폭이 좁았다. 안경테보다 더 비싼 렌즈. 안경테보다 더 멋진 케이스.

초고굴절용 특수렌즈라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봤자 마이너스 10디옵터 렌즈의 두께는 속일 수가 없다. 이렇게 안경만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실제로 이 안경을 쓰고도 웃겨 보이지 않는 이는 별로 없다. 물론, 내가 써도 웃긴다. 그리고 안경 쓰고 처음 운전해봤는데, 컨택트렌즈에 비해 어찌나 시야 확보가 안 되는지... 정말 사고 날 듯 불안했다.

안경에 익숙해지는 기간 동안 운전을 중단하려니 답답하고, 운전을 하려니 안경을 못 쓰겠고. 그 동안 새 안경 맞춘 후 계속 바쁘고 야근하고... 결국 안경을 제대로 못 썼다. 그런데 신기한 증상이 나타났다. 계속되는 야근은 눈에 무리가 될 테니, 눈 침침 증상은 심해져야 하는데 날이 갈수록 오히려 완화되는 것이었다. 혹시 야근이 정말 내 체질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보고. 그러다 문득 바라 본 천정의 유난히 밝은 조명. 허걱!

그랬다. 원래 휴게실 용도의 무드조명이 설치된 현재의 방은 다른 방에 비해 유난히 불빛이 어두웠다. 그래서 이사를 하자 마자 별도의 책상용 스탠드까지 마련하지 않았던가. 결국 지난 3월 말에 조명 추가 공사를 했다. 그 뒤 한결 밝아진 실내. 그에 따라 나의 눈 침침 증상도 없어진 것이 아닌가.

거금을 들인 제4의 눈, 외출용 안경... 에구 아까워.

5/19/2007

여름이의 다섯번째 생일

지난 4월 28일은 여름이의 다섯번째 생일. 그 날은 몇 백년 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날이기도 하고, 초등학교 동창 내 친구의 생일이기도 하다. 올핸 회사 야유회 때문에 제대로 생일을 챙겨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내 생일보다 여름이 생일이 더 중요하다. 사실, 여름이 생일 선물 챙겨주겠다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지만 올해는 거절했다. 여름이에게 더 필요한 '물건'들은 거의 없기 때문에.


↑ 어쩌다 보니 생일케익이 두 개씩이나.

오는 7월 13일이면 여름이가 나의 가족이 된 지 5년째 되는 날이다. 여름아, 앞으로도 쭈욱 건강해야 해~

여름이가 좋아하는 노트북

여름이가 5.2kg의 체중을 유지하게 된 지도 어언 4년. 동물에게는 매일의 일상이 늘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같이 살아보면, 그들의 취향이 얼마나 변화무쌍한지, 사람과 더불어 사는 동물들의 일상에는 얼마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양한 사건들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여름이에게는, 내가 밖에서 묻혀 들어오는 온갖 세상의 냄새도 신기하고, 손에 들고 들어온 쇼핑백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궁금하고, 비닐 포장지만 부스럭 바닥에 떨어져도 새로운 장난감이 생기는 것이다.

요즘 여름이에겐 HP TX1014AU 노트북이 꽤 쓸모있는 가전(?)제품이다. 따뜻해서 좋고, 기대기도 좋고, 발로 모니터를 꾹꾹 눌러도 괜찮다. 키보드와 화면의 거리를 넘어 얼굴에 딱 붙여서 볼 수도 있다.



나보다 HP 노트북을 더 좋아하는 여름이. 어떤 때는 아예 키보드 위를 점령하기도.



HP 노트북의 박스까지 사랑한다.



오른쪽의 면봉은 여름이가 요즘 푹 빠진 새로운 장난감. 덕분에 청소기를 돌리면 집 안 곳곳에서 면봉이 몇 개씩 발견된다.

나에게도 왔었다

얼마 전, 화창한 날씨에 소방방재청으로부터 난데없이 날아 온 '긴급재난정보'. 메시지 한 번 보고 바깥 하늘 한 번 보고... 곧이어 날아온 정정메시지가 바로 이것.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이 고개를 갸우뚱했을까? 그 중의 일부는 항의전화까지 했었다고 뉴스에 소개되기도 했던 바로 그 사건.



어릴 땐 날씨가 뭐 그리 중요한가 생각했는데, 점점 일기예보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공통의 화제를 찾을 수 없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가장 흔히 하는 이야기가 날씨 이야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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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비가 그치자 마자 한 달만에 세차했다. 차가 고양이도 아닌데, 이렇게 목욕을 안 시키다니... 주인 잘 못 만나 늘 미모가 먼지에 덮혀 있으니 좀 안 되긴 했다.

5/18/2007

세 가지 배신



여름이는 새 노트북을 좋아한다. 키보드 오른쪽에 따뜻한 바람이 슝슝 나오는 것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소파에 엎드려 노트북을 열기만 하면 스르르 나타나 노트북에 기대어 식빵자세로 앉아 나와 같이 모니터를 본다. ... 그리고 금방 졸려버린다. 뭔가, 모니터 속의 여러 가지 사진들과 소리를 들으며 좀 더 나와 같이 교감할 수 있었으면 하는 나의 소망에 대한 (그리고 당연히 예상되는) 배신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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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문득, 업무상 운영 중인 여러 사이트들이 비스타 환경에서도 제대로 작동하는지, 제대로 보이는지 궁금해졌다. 주위에 마땅히 비스타로의 선행모험을 감행할 사람이 없어 부득이하게(!) 구입하게 된 HP TX1014AU. 맥북보다 무겁고, 맥북보다 화면이 작고, 맥북에 비하면 배터리가 있으나 마나, 맥북보다 키보드도 불편한 이 노트북의 개인기는 터치스크린을 갖춘 일종의 태블릿PC라는 점이다. 입력방식이 약간 후진 감압식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개인용 Entertainment PC라는 컨셉에는 가격 대비 재미가 적정 수준이다. 배터리만 빼면 하드웨어에는 그럭저럭 만족이나, 비스타는 아직 좌절스럽다. 우리나라 인터넷 환경에선 오히려 맥OS 보다 못한 느낌이라니... 이 역시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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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거의 한 달여 만에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에 약간 들떠 Draft 저장 없이 길게 글을 쓴 후 'Publish' 버튼을 클릭했는데 한참동안 반응이 없다가 결국 서버 에러 메시지가 나타났다. 물론 그 전에 썼던 글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블로거, 아니, 블로거의 주인 구글에 대한 배신감. 구글... 너는 믿었는데... (그래서 이번엔 중간 중간 저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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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 그만 생각하고 이만 자야겠다. 여기에서 더 미적거리다가는 여름이가 왜 자기랑 같이 잠자리에 들지 않는 것인지, 나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끼게 될 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