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7/2008

온전히 바라보기

9/17/2008 01:39:00 AM

'온전(穩全)하다'는 것은 '본바탕 그대로 고스란하다', 즉 '있는 그대로'라는 말이다. '바르거나 옳다'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무엇이 바르고 옳은지를 평가하는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그 기준은 바뀔 수 있지 않겠는가. 모자람이나 흠이 없다는 '완전(完全)'이란 단어와는 언뜻 비슷하게 보이지만 그 의미는 절대 이웃에 둘 수 없겠다.

오늘 '온전히 바라보기' 연습을 할 기회가 있었다. 낯선 사람의 눈을 처음엔 1분, 1분 30초, 2분씩 아무 말 없이 바라봐야 한다. 상대방을 모르지만, 온전한 존재로 존중하며 그를 바라보기에 몰입하는 것이다. 낯선 이는 커녕, 가까운 이와도 눈을 그렇게 오랫동안 빤히 마주보는 일은 없으니 당연히 어색하다. 어색한 상황에서 몰입하려니 눈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컨택트렌즈 착용한 눈이 무척 건조해져서 불편하기까지 하다. 서너 번 연습 후엔 조금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어렵다.

'온전히 바라보기'를 잘 하게 되면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해도 화가 나지 않고 사랑스럽다나. 그것은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닌가. 하지만 그런 사랑은 대부분 움직이는 것이지. '온전히 바라보기'의 경지에 이르면 이런 저런 관계의 문제들이 대부분 해결될 수도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 끝자락에 문득 여름이가 생각났다.

여름이는 고양이니까, 당연히 나와 말로 의사소통할 수 없다. 사람 말은 아니지만, 여름이도 소리로 의사표현은 한다. '짖는' 개보다 '우는' 고양이가 훨씬 더 다양한 목소리 표현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여하튼 지금은 여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알아듣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내가 얼마나 여름이를 사랑하는지, 여름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것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교감한다.

시선을 너무 오랫동안 마주하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특히, 동물들은 싸우기 전에 그런 식의 눈싸움을 하기 때문에 적의를 가지고 대하거나 피해버린다. 여름이도 어릴 땐 내가 빤히 쳐다보면 먼저 눈을 피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여름이에게 어떤 대답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고, 내가 얼마나 자기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여름이 눈을 바라본다. 그렇게 여름이 눈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여름이도 똑같이 나를 바라본다. 그래 알아, 하는 지긋한 눈빛으로.

사람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기대를 갖게 되고, 또 상대방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하는 복잡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더 어려운 것 같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따뜻한 애정을 가득 담아 온전히 바라보기. 내 마음의 평화가 우선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적당히 둔감한 것이 편하게 사는 길인데, 이런 연습에 자꾸만 노출되어 너무 민감해지는 것은 아닐지 조금 걱정된다.

2 comments:

BluedSnow said...

글 잘읽고 갑니다 ^^.

예전에 무언가 검색하다가 (아마도 만년필이였던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검색에 걸려 글을 보게 되고 그 후로 종종 들렀었는데요, 덧글 남겨 보긴 처음이네요...

또 들르겠습니다.

pepleo said...

살아있으면, 무엇이 되어 어디에서 어떻게 만날지 모른다더니 정말 그런가보네요. 저도 참 자주 옮겨다니는데 말이죠. 반갑습니다. =) 만년필은 요즘 딱 세 자루만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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