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4/2009

내 마음 속의 동화책

6/14/2009 01:10:00 AM

나는 한 번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다시 되새겨 떠올리는 편이 아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시작한 그림일기부터 다 자라서까지도 가끔 일기를 썼지만 주기적으로 폐기처분한 덕택에,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일기는 하나도 없다. 다행히 1997년부터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게 되면서 공개적으로 썼던 글들은 실수로 날린 것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즈음부터 시작하여 이젠 2만장을 훌쩍 넘긴 디지털 사진 기록.

그러나 살아가는 데에는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이 아주 중요하단다. 갑자기 기억을 하려니 처음엔 잘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내려 애쓸수록, 오래된 앨범 속 스냅사진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곱 살, 다섯 살 조카들이 문득문득 어른들이 전혀 예상치 못할만큼 통찰력(?)이 있고 어른스러운 말을 한다며 놀랄 때가 있는데, 사실 일곱 살 때의 나를 돌이켜보면 "이 정도면 나도 다 컸지. 난 일곱 살이라구." 이렇게 의기양양한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다.

내 마음 속에는 내가 겪었던 모든 최초의 경험들, 스스로의 발견에 신기하고 뿌듯했던 순간들이 한 권의 동화책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런 동화책을 갖게 해 주신 부모님이 정말 고맙다. 주어진 상황에서 가능하면 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해 주셨고,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으셨고, 나 스스로 결정하되 책임도 내가 져야한다고 하셨다. 사회에 나가면 아래 위로 열 살은 친구이니 동생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내라 하셨고, 사람은 항상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야 하며, 늘 나보다 더 나은 위치의 사람들보다는 어려운 사람들을 우선 생각하라 하셨다. 방에 있으면 오히려 나와서 TV 보면서 얘기하자 하셨고, 학교에 가기 싫으면 가지 않아도 되었다. 몇 번 무단결석을 했는데, 그 때도 아주 크게 혼나진 않았다. 우리 집의 미덕은 무조건적인 성실보다는 자율이었나?

그 중에서도 가장 고마운 일은 책과 늘 가까이 할 수 있었던 환경이다. 다른 부모님들은 못 보게 한다던 잡지책이나 만화책도 마음껏 보게 해 주셨고, 생일엔 단골서점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골랐다. 집엔 항상 책이 많았고 책을 읽는 것은 가족 모두에게 밥 먹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대학시절까지는 아파트 바로 뒤가 시립도서관이어서 그 곳에 가서 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의 보험설계사 만큼이나 많았던 방문 책 판매원의 권유 때문에 전집류를 들여놓을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는데 결론적으로는 세계문학전집이나 세계 유명화가 50인 명화전집, 정신세계사의 150권 정도 되었던 문고판 책들, 창간호부터 구독한 리더스 다이제스트, 김찬삼 세계여행기, 학생들에게 압수한 플레이보이지(이건 우연히 발견하여 몰래 본 것)에 이르기까지 참 다양했다. 그래서 지금도 내가 책을 구입할 때 장르 불문하고 선택을 하는 것일까? 6월 중에 부모님이 서울에 오실 일이 있는데, 그 때 다함께 교보문고에 가서 책 쇼핑이나 실컷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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