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2010 26:07:00
(사진 왼쪽부터 순서대로 - 스탠드 불빛 아래 아이폰으로 촬영한 사진이라 잉크와 만년필 색상이 제대로 나타나진 않았으니, 참고만 할 것. 다음에 기회가 되면 밝은 곳에서 한 번 더 촬영할 예정)
Noodler Squeteague / Faber-Castell Mondoro Black
다양한 색상을 자랑하는 누들러 잉크 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이름에 속하는 Squeteague. 찾아보니 Weak fish, 민어과의 식용 물고기 정도 되나 보다. 검색되는 사진들을 보면 산지에 따라 몸통 색깔이 조금씩 다른데 그 중에서도 검은 초록색을 띠는 것이 있다. 그래서 이렇게 이름을 붙였나 보다. Faber-Castell의 고유 컬러인 진초록, 갖고 싶었던 미니 색상 British Racing Green이 떠올라 선택했고, 그래서 새로 구입한 몬도로의 첫 잉크로 넣었다. 색상은 매우 마음에 드는데 종이에 따라 뒷면에 좀 많이 비치는 경향이 있다. 얇은 종이엔 비추. 그리고 누들러 잉크가 물에는 좀 강한 대신 마름성이 좀 떨어진다. 실험에 의하면 점성이 높아 오래 사용하지 않을 경우 만년필 내부에 착색이나 응고될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그래도, 색상이 다양하고 선명할 뿐 아니라 잉크병과 종이 포장도 강한 개성이 묻어나 매력적이다.
Waterman Florida Blue / Montblanc Meisterstuck 144 Bordeaux
워터맨의 플로리다 블루 잉크는 나의 15년 동지. 나 뿐만 아니라 많은 고정팬들을 가진 특별한 잉크이다. 1998년 환율 급등의 시절에 잠시 수입이 중단된 적도 있었는데, 이 잉크를 구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며 재고 확보를 위해 노력했던 기억도 있다. 몽블랑 마이스터스턱 144 보르도 색상 만년필은 2001년 1월 또는 2월 구입할 당시에 이미 수입이 중단되고 이윽고 생산중단된 희귀품(?)이다. 1990년대 후반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은 검정색 144가 한 자루 더 있지만, 펜촉이 망가졌어도 단종품이라 수리를 할 수가 없어 그것은 못 쓰고 있다. 와인색 바디에 어울리는 워터맨의 "하바나(Havana)" 잉크나 몽블랑의 "보르도" 잉크를 사용할 때도 있지만, 가장 오랜 조합은 플로리다 블루와 짝을 맞추는 것이다. 2005년에 두 번 A/S를 받으면서 144도 수명이 다했다고 생각하고 새 만년필을 구입했지만, 여전히 열 번에 예닐곱 번 정도는 144를 꺼내들게 된다. 나의 15년 만년필 생활 중 최장수 파트너.
Noodler Nightshade / LAMY CP1 56 Black
처음 Nightshade라는 이름을 봤을 땐, 밤 그늘(?), 어스름한 땅거미 내린 분위기를 연상케 하여 아주 근사하다고 느꼈다. 무슨 게임 캐릭터의 이름이라 해도 그럴 법한. 그러나 찾아보니 그보다는 더 명확한 자연물, 가지과 식물에서 가지고 온 이름인 것 같다. 검은 빛을 띤 갈색이나 보라색. 가지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유사한 색상인 "하바나"와 "보르도" 잉크가 바닥을 보이는 시점에서 구입한 잉크라서 당분간은 사용해야 한다. 몇 년 전, 프랭클린 플래너를 쓰면서 세필 만년필이 필요하여 구입한 알루미늄 재질의 LAMY Al Star 26은 가격대비 성능 짱이었다. 그래서 만년필을 처음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권하기도 했다. 디자인은 동일하고 재질만 다른 사파리 시리즈도 인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Al Star 26은 여전히 훌륭하지만, 그 무난함이 약간 지겨워질 때도 있다. 작년 하반기에 번쩍 눈에 띄어 구입하게 된 LAMY CP1 56. 현재 판매되고 있는 만년필 중에서 가장 날씬하면서도 그와는 상반된 무게감을 지녔다. Al Star 26과 마찬가지로 CP1 56 역시 EF 펜촉으로 세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직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차가운 재질이라 겨울엔 선뜻 손이 가지 않는 펜이다. 어울리는 잉크 짝도 아직 찾지 못했다.
Faber-Castell Black / Porsche Design TecFlex Steel-Gold P3110
지금까지 보유했던 만년필 중의 최고가는 워터맨의 세레니떼. 10여년 전 출시와 동시에 구입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떠나보낸 펜이었다. 그 다음으로 고가인 만년필이 바로 이 포르쉐 디자인의 테크플렉스 스틸골드 모델. 2005년도에 인생 3막 시작을 기대하며 야심차게 구입했지만, 지금까지 내 손을 거쳐간 만년필 중에 가장 홀대받고 외면당한 비운의 펜이랄까. 평소 내 취향을 고려한다면, 이 펜은 너무 화려하고, 너무 차갑고, 너무 무겁고, 펜촉도 너무 두껍다. 특히, 펜촉은 F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M 수준이다. 포르쉐 디자인 만년필은 실질적으로 파버 카스텔에서 제작하고 있다. 그렇다면 펜촉 역시 파버 카스텔의 다른 F와 비슷해야 하는데, 포르쉐 디자인은 지나치게 박력이 있는 F 사이즈인 것이다. 자주 쓰지 않는 대신, 본가인 파버 카스텔의 검정색 잉크를 넣고 있다. 특별히 좋다고 느껴지는 잉크는 아니다. 파버 카스텔과 크로스(Cross)의 잉크는 펠리칸(Pelikan)에서 생산하는 것이라고 한다. 살펴보면 병 모양도 똑같다. 테크플렉스를 구입할 때 따라온 것으로 기억된다.
환율의 변동 때문일까? 현재 테크플렉스는 5년 전 구입가의 1.5배 정도로 판매되고 있다. 기름값과 마찬가지로 수입 만년필들의 가격 역시 한 번 오르면 내릴 줄을 모른다. 지금 보유 만년필 여섯 개 중에 다섯 개가 현역이라고 볼 수 있는데, Al Star를 재택근무시키더라도 위 사진의 네 개를 모두 가지고 다니려니 좀 부담스럽다. 만년필 파우치는 3구, 2구, 1구짜리 각 한 개씩 모두 3개가 있다. 각 만년필에 대한 애정 쏠림 현상이 있기 때문에 네 개를 하루에 한 번 이상 써 주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물건은 제 용도로 쓰일 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던가. 내가 물건에 대해 용불용설(用不用說)을 지나치게 적용시키나?
현대인은 수면 부족이라고... 하루에 여섯 시간도 잠이 부족한 것이라 하는데. 벌써 새벽 네 시이다. 이렇게 주절주절 글을 늘어놓고 있는 것은 그 동안 쓰지 않은 것에 대한 보상일까,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회피하려는 핑계를 만드는 것일까. 그것이 무슨 일이든, 지금은 네 가지 색 잉크와 만년필 네 개의 최적 조합을 찾는 것이 더 흥미롭다.
2010-03-23
4색 잉크, 4색 만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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